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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한 책, 나의 생애와 사상(슈바이처 자서전)

그리스도의 이스라엘(Christal Israel) 2024. 5. 2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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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

 

우선, 슈바이처라는 인물은 청소년 도서 '위인전기' 에 등장하는 인물이고,

 

어려서 위인전으로읽어보긴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다..서점에

 

우연히 책 구경하다가 구입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의 키워드는 '헌신'이다.

 

슈바이처의 헌신이란, 기독교 신앙에의 헌신, 그리고

 

약소국 아프리카에서 의료인으로 희생봉사한 헌신 등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기독교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또 정통 파이프오르간 포교(전도) 전문 음악가였으며

 

특히 아프리카 의료봉사자였다. 또 이와관련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라고

 

알려졌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사실, 현대음악 현대 오르간에 대한 비판도 조금 있었는데

 

자세한 건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라고, 아래엔 책 내용 일부를

 

요약해 볼테니 관심있으면 사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않을것이다.

 

철학적 용어 등이 나와서 이해가 다소 어려운 추상적 개념도 종종있지만

 

아무튼 기독교복음 관련 내용위주로 일부만 간추려 보겠습니다.

 

 

<책 속의 내용 일부요약>

 

 

나의 교육 목적은 복음의 진리를 그들의 마음과 생각속에 심어주어 후일 무종교에 대한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이에 저항할 수 있을만큼 그들을 종교적인 인간으로 만드는데 있었다. 또한 교회에 대한 사랑과 주일예배에서 영혼의 안식을 찾으려는 욕구를 일깨워주려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교리를 존중하되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있는곳에 자유가 있다는 바울의 말씀을 굳게 지키라고 가르쳤다.

 

 

초기 기독교의 만찬의식은 예수의 속죄의 죽음의 성스러운 반복이나 상징적 재현과는 전혀다른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베푼 최후의 만찬의 반복이 처음으로 이러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죄사함을 재현하기 위한 가톨릭의 미사제물과 신교의 성만찬 의식에서였다. (..중략)

 

예수는 이와같이 후기 유대교 메시아 대망의 외형성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그는 결코 이것을 정신화하려 하지않는다. 그러나 그는 율법과 율법학자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하나님과 메시아에 속하고 다가오는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도록 선택되었다는 증거로, 사랑의 절대윤리의 실행을 요구함으로써 이 대망을 그의 강력한 윤리적 정신으로 충만시켰다.

 

예수의 말에 따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하나님 나라의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애통한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박해받는 사람, 어린아이처럼 되는 사람 들은 복을 받게 된다.

 

(...중략) 이리하여 예수 생애의 종말론적 해석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신빙성에 대한 모든 의혹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해석은 이 두 복음이 예수의 공적활동과 죽음에 대해 세세한 점에서까지 믿을 수 있는 충실한 전설에 따라 보고를 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만일 이 전설속에 애매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다소있다면 그것은 주로 제자들 자신이 예수의 말씀과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기독교 신앙을 설득하여 역사적 진리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게끔 하는것이 나에게 부과된 사명이지만,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진리는 모두 예수의 정신에 속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기꺼이 거기에 따른다.

 

 

활동하는 시간이 찾고 기다리는 기간보다 더 긴 사람들은 행복하다. 자신을 완전히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중략...) 아무리 보잘것없는 개인적 활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필요로하는 인간에게 인간이 되어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할때 비로소 직업생활과 더불어 인간생활이 구제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정신적이고 선한것에 봉사하게 된다. 어떠한 운명도 이러한 직접적인 인간봉사를 부차적인 활동으로 삼는것을 막지는 못할것이다. 이런일이 많이 실현되지 못하는것은 사람들이 소홀히 대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현재 처한 상황 아래서 다른사람에게 참다운 인간성을 행동으로써 표시하려고 노력하는데 인류의 장래가 달렸다.

 

19세기 초 경건파와 정통파 사이에는 복음을 이교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한 여러 단체들이 생겨났다. 거의 같은시기에 자유사상적 기독교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을 먼나라에 전파할 가능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활동에서는 교리에 얽매인 교파쪽이 자유사상적 교파쪽보다 앞서있었다. 전자는 교회조직 밖에 서 있는 독자적이고 활동적인 여러단체를 통하여 당시 교회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교회일에만 몰두하던 자유사상적 기독교보다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많이 갖고있었다. 또한 복음을 주로 인간과 인간 사회의 여러관계를 쇄신하는 힘으로서 이교도 세계에 작용케 하려했던 자유사상적 기독교보다는 교리에 얽매인 기독교가 '영혼구제'라는 경건한 사상때문에 선교활동을 위한 더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건파와 정통파의 선교단체가 활동을 시작하자 선교활동에 호감을 지녔던 자유사상적 단체에서도 이를 지원해주었다. 자유사상적 기독교는 오랫동안 독자적인 선교단체를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모든 신교도가 참여하게 되면 기존 선교단체들이 차츰 그 나름대로 신교의 선교사업을 수행하게 되리라고 기대했으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정통파 선교단체들은 자유사상적 신교 측에서 보내오는 물질적 지원을 받아들였지만 - 사실 나의 부친만 하더라도 알자스에 있는 자유사상적 동료들과 함께 신앙적 입장이 다른 선교단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가 - 그들의 신앙적 요구를 거부하는 선교사는 한 사람도 파견하지 않았다.

 

자유사상적 신교는 이와같이 독자적 선교사업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다른교파의 선교사업을 지원해주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급기야는 선교사업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않는다는 평을 듣게되었다. 마침내 자유사상적 신교는 신교 교회 전체가 연합해서 행하는 선교사업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독자적 선교단체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지만 때는 이미늦었다. 복음 일반에 관한 일인 것처럼 사방에 원조를 요청하면서도 자기들과 신앙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만 선교사로 받아주는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항의를하면, 그들은 '자기들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이 사람들의 견해를 고려에 넣지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늘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선교사 자신들은 대체로 선교회 간부들보다 생각하는 폭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민족, 특히 원주민 토인들 사이에서는 우리들처럼 정통파냐 자유파냐 하는 문제를 따질 필요가 없으며 산상수훈과 같은 복음의 원리를 전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정신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았다.

 

 

문화의 본질이라면 우선 개인이나 사회의 윤리적 완성을 들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정신적 또는 물질적 진보도 문화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문화에 대한 의지는 윤리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의식하는 보편적인 진보의지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것은 지식과 능력이 이룩해놓은 업적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인류는 윤리적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에만 물질적 진보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수있고, 또 거기에 수반되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에서 사고를 시작한다. 그는 이와같이 시작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따위 내용없고 허구적인 사고행위로는 인간이 자기자신과 우주에 대하여 어떤관계를 맺는지 전혀 알수가 없다. 그러나 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사실은 어떤 내용을 갖고있다. 사고란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살려고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사실이다. 인간은 자기자신과 주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자신을 생명의지 한가운데 서있는 생명의지로 파악한다.

 

우리는 윤리적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을 통하여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와 비본질적인 요소를 구별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갖게된다. 그렇게되면 우리의 문화에 대한 어리석은 자만은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만다.

 

 

세계와 인생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종교들(브라만교, 불교)은 문화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않는다. 예언기의 유대교, 그와 거의 동시에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교 및 중국사상가의 종교성은 그 윤리적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 속에 문화에 대한 강력한 추진력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들은 사회상태를 개선하려 할 뿐 아니라 실현되어야만 할 보편적인 목적을 위하여 뜻있는 행동을 하도록 인간에게 촉구한다. 반면에 염세적 종교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끝까지 고독한 명상속에서 지내도록 한다.

 

유대 예언자 아모스와 이사야(BC 760~700)와 차라투스트라(BC 7세기)및 공자(BC 560~480)는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며 아무런 접촉도 없었던 세 민족에 속하는 사고하는 인간들은 윤리가 전통적인 민족의 관습을 따르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개인이 이웃이나 또는 사회상의 개선이라는 목적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데 있다는 인식에 동시에 도달한다. 이 위대한 혁명속에서 인류의 정신적 인간화가 시작되고 이와 동시에 최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문화가 시작된다. 기독교와 힌두교는 전적으로 세계 및 인생 긍정적이거나 전적으로 세계 및 인생 부정적도 아니고 세계 및 인생 긍정과 세계 및 인생 부정을 동시에 같은 정도로  내포한다. 따라서 양자는 문화 부정적일수도 있고 문화 긍정적일수도 있다.

 

기독교는 세계 종말의 대망속에서 생겨나 자연적 세계의 상태개선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기때문에 문화 부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활동적 윤리를 내포하는 이상 현저하게 문화긍정적이다. 기독교는 고대세계에서는 문화 파괴적 역할을 했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을 개혁하고 윤리적 인간성을 창조해보려던 후기 스토아 학파의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고 만데 대한 책임의 일부를 져야한다. 사실은 우리가 에픽테토스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는 후기 스토아 학파의 윤리적 견해는 예수의 윤리적 견해와 비슷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윤리가 세계 및 인생 부정적 세계관과 결합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기독교는 근대에 와서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를 거치는 동안 원시 기독교의 세계종말 대망의 잔재인 세계 및 인생 부정을 탈피하고 세계 및 인생 긍정을 받아들임으로써 문화의 실현에 주력하는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는 그와같은 종교로서 무지, 비합리성, 잔혹 및 불의에 대한 투쟁에 참여했는데 이 투쟁을 통하여 근대에 와서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다. 오직 기독교의 강력한 윤리적 활동력이 근대의 세계 및 인생 긍정의 진보의지와 결합하여 시대에 봉사했기 때문에 17세기와 18세기는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해야만 할 문화사업을 수행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에 후퇴한 세계 및 인생 부정이 기독교 속에 내포되어 있던  중세 및 후기 중세적 경향에 의하여 다시 의미를 지니게 됨에 따라 거기에 비례해서 기독교는 문화에의 추진력이기를 그만두고 다시 문화에 대한 방해자로 등장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의 역사가 잘 말해준다.

 

힌두교에서는 세계 및 인생 긍정이 세계 및 인생 부정을 실제로 지배할 수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힌두교는 결코 염세주의적 전통과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그러나 16, 17, 18세기의 기독교는 유력한 사상가들에 힘입어 이 일을 해낼 수가 있었다. 따라서 힌두교는 그 윤리적 추진력에도 아랑곳없이 그 전파 지역에서 기독교에 비교될 수 있는 문화사업을 해낼 수가 없었다.

 

회교는 단지 그 광범위한 전파지역 때문에 세계종교라 불릴 수 있을것이다. 회교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심오한 사고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가 없었다. 회교는 전통적인 제 견해의 권위를 지키려고 그와같은 사고가 보이는대로 타도해버렸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회교는 신비주의와 윤리적 신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겉보기보다는 훨씬 강하다.

 

 

문화몰락에 대한 책임은 19세기 철학이 져야한다. 19세기 철학은 계몽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문화의지를 생생하게 보존할 줄 몰랐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사고를 통하여 진정한 문화의 이상을 내포하는 세계관에 다시 도달하여야 한다. 윤리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다시 심사숙고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비문화에서 문화로 되돌아가는 길을 가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다. 심오한 경지에 이르는 모든사고는 윤리적 신비주의로 끝난다. 합리적인 것은 비합리적인 것에 존속한다. 생에 대한 외경심이라는 윤리적 신비주의는 합리주의를 그 궁극에까지 사고해간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이 메시아왕국에 참여함으로써 다른사람들보다 먼저 부활의 존재방식을 취하게 되는것은 그들이 어떤 특수한 육체적 생존을 그리스도와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메시아의 반려자로 선택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신비로우면서도 자연스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작용하던 사망과 부활의 힘이 그가 죽어서 부활하던 그 순간부터 그들에게도 똑같은 작용을 한다. 이와 동시에 이 신자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자연적 상태에서 초자연적 상태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들이 지닌 자연적 인간의 모습은 메시아왕국이 도래하는 날 벗어버릴 베일에 불과하다. 그들은 신비스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망했고 부활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부활의 존재방식에 따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게될 것이다.

 

(..중략) 그러나 바울은 그의 토론방법에 종종 유대 율법학자적 냄새가 풍기긴 하지만 사실 박력있는 근본적인 사상가다. 그는 예수의 단순한 복음을 글자그대로 계승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에 따라 계승한 것이다. 그는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신앙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합이라는 신비주의로 발전시킴으로써 이 신앙에 종말론적 대망의 쇠퇴를 견디어내고 여하한 세계관 속에서도 윤리적 그리스도 신비주의로서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종말론적인 그리스도 신앙을 궁극적인 데까지 추구함으로써 예수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관해 비록 종말론적인 형이상학에서 생겨나긴 했지만 그 정신과 윤리적 의미에서 궁극적이며 시간을 초월한 사상에 이르렀다. (이하생략..)

 

 

생에 대한 외경심의 세계관은 그 종교적 성질을 띤 활동적 사랑의 윤리와 그 내면성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세계관과 본질적으로 같다. 이리하여 기독교와 사고는 전보다 정신생활에 더 유익한 새로운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가 가르쳐주었고 사고에 의해 파악되는 기독교의 본질은 우리가 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생생한 인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서 사랑의 의지로 체험하는 데서 비롯된다. (...중략...) "지식은 끝이있어도 사랑은 끝이없다." 라고 바울은 말했다. 신앙심은 깊을수록 초감각적인 것에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윤리적 진보의 이상을 힘으로 발산할 수 있을만큼 순수하고 심오한 인격의 소유자가 나타나 무사상의 정신에 항거한다면 인류속에 새로운 성향을 산출할 수 있는 정신활동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진리와 정신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에 인류의 장래를 믿는다. 윤리적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은 낙관적인 의욕과 희망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욕과 희망은 상실될 수 없다. 그러므로 윤리적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은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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