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기초/목사저서

여섯째날 창조(창1:24-28)

그리스도의 이스라엘(Christal Israel) 2023. 11. 2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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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하나님이 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신 날이다. 특별히 사람을 창조하신 날이다. 사람과 짐승은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 가장 귀한 창조물이다. 이를 계시한다.

 

 

1. 사람 창조는 특수 창조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심은 특별한 순서와 방법을 가진다. 다른 것은 말씀을 가지고 창조하셨으나 사람은 특별한 경로를 가진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이 의논하였다.

 

다른 창조를 할때에는 삼위 하나님이 의논하였다 하는말이 없다. 그러나 이때에는 의논하고 창조하였다. 사람에게 집중된 창조이다. 다 사람을 위하는 창조가 된 것이다. 그만큼 사람이 물질세상에서는 주인된 입장이다.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요4:24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하였다. 그런데 사람은 육도 있고 영도 있다. 이는 사람에게 영의 부분, 하나님과 연결 부분이 있다 하는 것이다. 창2:7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다음에 코에 생기를 넣어 생혼이 된지라 하였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물질세계와 연결을 가지게 했다.

 

3) 사람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창조하신 것이다.

 

참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의 목적의 대상으로 창조된 탁월한 존재이다. 영 육의 합일체이고 다른 존재들을 다 통치하는 위임 치리자로 창조되었다. 만물의 영장으로 사람의 위치를 정하였다. 그러므로 창조과정에서 이미 이같이 귀한 순서와 방편을 가진것을 우린는 깊이 생각하고 대할 것이다. 여기에서 아직도 사람은 원숭이가 진화하였다고 하는 진화론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수한 창조물이고 만물을 지배할 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릇되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가. 원숭이는 네발로 걷지만 사람은 두발로 걷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산다. 원숭이가 네발로 다니다가 점점 진화되어서 사람이 된다면 엉거주춤한 채 구부리고 네발로 다니는 화석이 발견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나. 근육들이 동물과 사람이 전혀 다른 형체를 가지고있다.

발가락과 손이 다르게 되어있고, 인간 발가락은 하나의 근육에 묶여있는데 원숭이는 4개의 발가락이 엄지발가락을 굳게 붙드는 일을 하였다. 그외의 구조가 다른것이다.

 

다. 지식적으로 발전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두뇌가 있는데 그 두뇌에 비해 원숭이는 아직도 한걸음도 발전이없다. 사람의 두뇌는 원숭이에 비해 1,000배나 더 발달되어 있다.

 

라. 사람은 영이 있어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성이 있는데 비해 원숭이는 종교성이 없다. 영이 없다 하는 것이다.

 

 

2.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할때 어떤것을 말할까. 이는 하나님의 영적 부분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없다. 다만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하고 더 인격교제를 위하고 닮게 하기위해서 사람의 생각에 맞게 말씀한 곳은 여러곳에 있다. 하나님이 눈을 가지고 계셔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살핀다 하는 말씀이 있고, 하나님이 귀가 있어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는다 하는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손이 있어 우리르 붙들어 주고 쓰고 돕는다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살피시고 계시다 하는 것을 말씀하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그런 형체를 가르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였을까. 그것은 다만 하난님이 사람과 상종하고 대화하고 교제하는 면을 성경이 이같이 밝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세상의 육을 입고 오실때에 사람으로 오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영을 표준해서 말씀함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더욱 깊은 다른뜻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성경에서는 다른면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성질이다. 이를 다른말로 하면 속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의 속성으로 우리를 만들었다 함이다.

 

 

3.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키워야한다.

 

성경의 중요한 사상은 자란다는 것이다. 에덴에 두심도 자라게 하려는 것이다. 또 구속한 우리를 세상에 두심도 자라게 하려는 목적에서이다. 하나님이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 그리스도의 분량만큼 자라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것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사람이 자라야 그 실력대로 맡기신다. 이것을 키우는 것이 하나님이 세상에 우리를 두신 목적이다.

 

1) 지식을 키워가야한다.

 

하나님이 치리권을 맡기심은 지식에 맡기심이다. (..중략..) 그런데 바른지식은 하나이고 삐뚤어진 지식은 많이있다. 그러므로 진리 지식을 아는것을 하나님의 속성이라 한다.

 

하나님이 만물을 치리하게함은 이 지식의 속성에 맡기신 것이다. 콩을 팥이라 하는 주장과 행위는 바른판단을 하는 심판때, 콩을 콩이라 하는 판단이 있을때에 자기의 주장한 것이 허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바로 아는 지식이 커져야 한다.

 

2) 지혜를 키워야한다.

 

지혜는 미래를 아는것이니 자기가 어떻게 해야 앞으로 잘될것인가를 아는것이 지혜이다. 자기의 마음에 대하여, 자기의 미래에 대하여, 전개될 일에 대하여, 전개될 존재에 대하여 아는 것이 지혜이다. 이것을 알고 대하는 것이 인격자이고 바른인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알지 못하면 바른것을 구하지 못한다.

 

3) 선을 키워야한다.

 

선(善)은 온전한 지식과 온전한 지혜에서 나온다. 이것들 없이 온전한 선이 나온다 하는것은 근거없이 허공에 기둥을 세운다 하는것과 같다. 새를 보고 화살을 쏘아야 새가 맞지 공중에 쏜다고 맞겠는가. 그러므로 온전한 지식과 지혜가 사용되어야 온전한 선이 된다.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께 바로하고 사람에게 바로하고 사물에도 바로하고 잘되게 하는것이 선이다. 이 선이 자라는 거시 내 영(靈)이 자라는 것이 된다.

 

4) 거룩이 자라야한다.

 

구별은 하나님과 자기와 만물과 시간과 공간과 지식과 지혜와 사랑에 대해서 구별을 해야한다. 이 구별을 바로하는데서 영이 자라고 자란 영은 정사에 대한 것이나 비진리와 진리에 대하여도 바로 구별을 한다.

 

5) 사랑이 자라야한다.

 

지식이있고 지혜가있고 선을 구별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안된다. 사랑은 생명의 존재이다.바른 사랑은 바른 지식에서 나온다. 바른지식이 있다하면 사랑은 살리는 사랑이 된다.

 

* )  어린이에게 공짜로 많이 먹일 수 있다고 무조건 많이먹이면 도리어 아이에게 해가된다. 무지한 사랑은 결과적으로 미움이 되는 것이다. 소에게 콩을 먹인다 해서 다되는가. 날콩을 먹이면 설사하고 해가된다.

 

6) 진실을 키워야한다.

 

진실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진실이 없는 사랑은 허식이고 간사가 된다. 산같은 봉사가 있어도 진실이 아니면 다 헛것이 된다.

 

7) 의가 자라야한다.

 

하나님의 뜻에 꼭 맞는것이 의다. 진실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한다. 하나님을 기준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기만 하면 의가된다. 이것이 자랄때에 하나님의 속성이 자라고 하나님의 위임한 치리를 받게된다.

 

8) 주권이 자라야한다.

 

의에 맞으면 주권자가 된다. 어떤 것에도 제재를 받지않고 자유하는 인격이된다. 이 세상은 이 속성을 키우는 밭이요 연단하는 훈련장이다. 내 영을 키우는 장소가 된다.

 

 

4. 사람의 위치

 

창2:8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두시고 하였다. 동산에서 위임자로 세워서 모든것을 보고하고 치리하게 한 자리가 사람의 위치이다. 다스리는 위치를 주었다.

 

1) 창조의 왕관으로 사람을 창조하였다.

 

여섯째날이 밝았을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는 벌써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물질게가 되어있었다. 하늘이나 바다나 큰 산이나 들이나 식물들의 아름다움이나 동물들이나 작은벌레까지 많은생물이 다 되어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으로 만족치않았다. 이들은 다 각기 자기생활을하고 각기 자기의 방법대로 살고 움직이지만 하나님과의 교제의 속삭임이나 대화의 살뜰함이 없다. 황소는 힘이있고 말은 빠른걸음을하고 사자는 번쩍이는 눈을 가지고 있으나 심령의 교제는 없었다. 여기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서 모든것의 사정을 알고 보고하고 교제하고 잘 키우고자 하는 뜻이 계신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물의 왕자로 창조하셨다.

 

2) 만물의 대표자의 위치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세울때에 만물의 대표자로 상대한다. 당의 대표위원이 있지 아니하냐. 대통령이 당을 대표해서 만날때에 대표위원을 만난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대표해서 사람을 만난다. 하나님이 다른것은 인격이 없고 사람만이 인격이 있게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상대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만이 모든 사정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다. 그리고 책임이 있다. 이때에 하나님께 좋은보고를 할 수 있어야한다. 번성도 안전도 교제나 친목이나 다 잘되고 있다는 보고를 해야한다. 이럴때에 하나님이 수고가 많이있다 하여 대우나 칭찬이 있는것이다.

 

3) 사람의 위치는 치리자의 위치이다.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도록 위치를 정해주셨다. 만물을 대할때에 위험을 느끼거나 떨게하지 않았다. 오늘처럼 맹수를 보면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이 아니라 저것들을 잘 길들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것이다. 그래서 한없는 보람을 가지고 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4) 구원의 이용물로 (세상을)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세상을 이용물로 주셨다. 사람은 소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청지기로 이용해야한다. 이제는 하늘의 것을 위해 이용을 잘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치리하게 하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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