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에서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먼저 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함을 기도로써 하라는 말씀이다. 명령으로 말씀하신 것이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창조의 목적을 알아야한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 하였는데, 바로 그 창조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다.
예)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는 자기의 기능이나 실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의 반응도 또한 지켜봐야한다. 이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라 함은 피조물 특히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존재에 있어 이름은 존재의 본체와 사역면을 합하여 말씀한다. 하나님의 이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본체에서는 존재의 본질과 본성과 본능면을 다 합한 것이다. 하나님의 본체는 12속성을 말하고 본질은 진리이고 본성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본능은 만능의 역사를 말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영원전 목적 선택 에정 창조 섭리 타락에서 대속 중생 성화 부활 심판 영화 무궁세계 영원한 통치, 이것이 다 들어간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어떤 것이라도 다 하시는 만능의 사역을 하시는데 이 모든것을 바로 알고 대하는 것이다.
사람과 접촉시에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정중히 대하는것과 형제를 대하는것과 아버지를 대하는것과 친구를 대하는것과 대통령을 대하는것 등이 다르다. 이름과 사역에따라서 대하는면이 다르고 대접이 다르다. 그러므로 그사람의 과거와 현재까지도 사역을 알고 행할때는 해를 당하지않고 이익을 볼수도 있다.
예) 옛날 이용도 목사님이 사경회 강사로 가면 허름한 모습으로 가곤 했었는데 사람들은 은혜로운 목산님이 오신다 해서 역앞에서 기다리다 만나지못하고 교회로 와서 예배시간까지 기다리다가 이목사님이 오시지 못했습니다 하면 그제서야 목사님이 "내가 이목사요" 하고 설교를 하셨다 한다. 우리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않고 속마음을 보시는 분이다. 고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는 사람에게 네가 믿는대로 되리라 하였다.
시91:14에는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였고 시9:10에서는 '주의 이름을 아는자는 주를 의지하오리이다' 하였고 시9:11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행사를 자랑하리라' 하였다.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어찌 되겠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대접을 받으셔야 한다. 십계명에서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말라(주: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라고 번역됨.) 하였다. 망령되이 말하는 자는 죄가 있다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이 명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헛되게 사용하고 불경스럽게 사용하고 모독적으로 사용하고 미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교만할 때에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 하는 망령된 자들이 나왔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거룩하다'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돗이라는 말로 칼로 벤 것처럼 하는 구별을 말하는데,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피조물과 구별이 된다 하는 의미로써 모든 더러움에서 완전하기에 절대적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있고 다음에는 도덕적으로 탁월한 거룩을 의미하기도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다. 하나님을 높이 존경하면서 경배를 하는 바른자세를 가지고 사는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는것이다.
1) 자신이 가장 높이고 존경하며 경배하는 분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서 자기가 되어진다.
그가 어떤 분을 가장 존경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격이 되어진다. 마찬가지로 그 가정이 어떤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는가에 따라서 그 가정의 전통을 알 수 있고, 국가가 어떤면을 강조하느냐에따라 그리고 국가가 그 법을 어느면에 강조하는가에따라 국가의 형성을 알수있다. 또한 국가의 문화 예술 도덕은 그나라의 종교에따라 달라진다. 미신적인 종교를 가진 나라는 미신적인 요소가많은 문화를 가지고있다.
2)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란 뜻은
(1)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 지식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아야 한다. 지식이 이같이 되면 하나님을 거룩하게 인식하고 모든 활동을 이와같이 한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고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대하고 상관하고 영접하고 관계를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하는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길수있는 자신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자신이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고 살때에 하나님을 따르고 닮으며 살수있다. 우리의 생활에서, 모든 존재가운데 하나님만이 참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이 참 본질이고 참 본성이고 참 능력자되심을 알고 살게 하옵소서 하는 인격이 되게하고 그런 자기 자체 온전자로 그 행위를 하는자로 살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를 할것이다. 이 인격으로 우리가 구비될때에 다니엘과 같은 담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으로 될 것이다. 세상의 껍질가지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아니라 하여 계21:8에서는 두려워하는 자들이나 믿지않는 자들은 불과 유황에 타는 못에 참예한다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우리 성도들이 생활을 할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만 통치받고 하나님께만 소속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살려면
1)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을 바로대하는 생활을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이같이 대하고 섬기는 일이 중요하다. 성도들은 기도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고, 하나님만이 참존재이고 다른것은 다 하난님이 존속시키니 존속이 되고 또한 거두어 가시니 거두어지는 의존의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앞에서 절하라 할때에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이고 만일 그렇지않다 하여도 절할 수는 없다하였다. 참존재는 하나님이고 존재의 힘은 하나님이 부여할때에 잠정적으로 가지고 쓰는것이다. 하나님을 섬길때에 하나님으로 바로 섬기어야 한다.
사람들이 사는데 가장먼저 상대하고 관계가지고 대접하고 영접할분이 하나님이시다. 다른것을 상대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어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다 하고 찾으면 이는 바로 섬기는 태도가 아닌것이다. 제일먼저 하나님을 상대하고 관계가지고 하나님께 주권을 돌리고 소속이되고 치리를 받아야한다. 이 세가지가 정립이되면 하나님을 바로섬기는 자세가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같은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1) 먼저 하나님께만 주권을 돌리자.
하나님의 주권만이 참된주권이고 완전하고 영원한 주권이다. 그러므로 다른국가나 사람의 주권은 하나님이 수여해야만 가능한 주권이다. 사람의 주권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이 빼앗아 갈수있다. 그래서 세상의 주권은 10년이상 계속되기는 힘들다. 그리고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다 주관하신다. 인간의 주권 생명 재물 명예 등 모두가 하나님이 주실때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빼앗으면 다 없어지는 것이다. 애굽의 왕들이나 앗수르 바벨론이나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들의 주권도 하나님이 하루아침에 돌려놓으면 다 빼앗기는 것이다.
(2) 소속을 하나님께 두고 살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그 나라의 일꾼들이다. 천국의 건설자로 하나님이 선택하였다. 이제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청지기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속을 바로하고 살아야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고 사는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살라는 말씀으로 항상 염두에 두고 살라는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왕이되는 일이나 적군과 전쟁을 하는 일이나 모두 하나님께 묻고 그대로 행하였다. 이는 자기의 상관이 하나님이고 소속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생이었다. 그러나 사울왕은 자기위에는 왕이 없다는 태도였으며 소속또한 없는 사람이었다. 이는 아담의 유전적인 속성을 가지고 육 단독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는 생이 아니었다.
(3) 치리를 하나님께 받아야한다.
하나님만이 나를 통치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는 치리자가 나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철저히 하고 하나님을 바로 상대하는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몸에 베어지게 하여, 자기는 마귀에게 끌리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알자. 마16:23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리기를 '주여 그런일이 결코 미치지 못하리이다' 하며 '십자가를 멀리하라' 하니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며 나를 움직이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이 마음대로 쓰는 몸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린이라도 나를 이끌고 가도 아무리 세상의 군왕이라해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하는것을 철저히 보이셨다. 하나님의 치리를 받고 사는것이 있어야한다. 장로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리가 하나님 주권사상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예정이 있고 창조가 있고 섭리가 있는것이다. 오늘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예) 이기선 목사님이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무리들에 이끌려 신사앞에 오니 이들은 절하기를 강요하였다. 이에 목사님은 '너희가 나를 이곳까지 가자한것은 하나님이 권세를 주어 나는 복종하였으나 절하는것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이 아니고 너희의 월권이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다' 하였다. 그리고 절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치리를 이같이 잘 받아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것이다.
2) 하나님을 증거하는 생활이 되어야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는것이 성도들로 증거가 되어야 한다. 고후3:3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는데 주님을 어떻게 보이겠느냐. 주님은 결코 세상을 심판하기보다는 구원하려 하신다는 것을 보일것이다.
증거는 교회의 임무이다. 주님이 가서 내 제자를 삼으라 하였다. 그리고 증인이되라 하신다. 전도하는 생활은 교인들이 마땅히 할 일이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않으면 저주가 임한다 하였다. 전도하는 것이 다른사람을 구원하는 일이된다. 또한 이 일은 자기를 위하여도 할일이다. 자기의 신앙이 키워지는 방편이 전도하여 주님의 양을 먹이는데서 되어진다.
교회의 존속은 전도를 통해서 되는 것으로 예정을 하나님이 하셨다. 교회가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써 기본적인 행위이다. 이를 행할때 자기인격이 구비되는 질과 양이 된다. 이를 다른각도에서 본다면 전도를 많이하면 자기가 자람이 된다기보다는 자기의 신앙성장이 외부로 표현된 것이 전도로 나타났다 함이 옳다.
오늘의 전도는 사람들의 인위저긴 수단에 의해서 기술적으로 하는 감이 없지않다. 그리고 한국의 교회수는 거의 3만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교회들이 어떤 방법으로 교인들을 증가시키는가. 더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파당적으로 운영을 하기도한다. 그래서 자기의 파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기위해 전시효과적으로 그리고 향락적인 면으로 교인들을 즐겁게하여 끌어들이고 무속신앙까지도 동원하여 교회의 타락을 가져오기도한다.
원래 하나님이 증거하라 하는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인격으로 구비하기 위하는 증거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게 하려 한 것이다.
3) 경건 생활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나타낼 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성도들의 생활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였는바, 그빛이 어두워졌다. 성도들이라 하여도 점점 거대한 세속사회가 침투해 들어와 그 물결을 막을 길이 어렵게 되고있다.
오늘의 서구사회가 세속적인 세상의 화려함으로 신실함을 빼앗기고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 하는 노력이 있어도 빼앗기는데 이 노력도 없는상태이다. 미국의 퓨리탄들이 사회를 건설하려 했으나 오늘에는 그 거대한 세속 물결에서 감당하지 못하고있다. 하나님을 바로믿는 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때에 머리숙여 경외하는 자세를 취한다. 어른들이 믿음을 바로가질때는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긴다.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는것을 알기에 벌써 신앙인의 기본자세가 되어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없고 전부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신다 하는 대전제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에서는 오만한 자가 많이있어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하는 공산주의자들도 있고 아무리 다녀보아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는자들이 있다. 이는 성도들이 생활로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일 하나를 바르게 성경대로 지키지 못하기에 사람들에게 생활로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종들이 충성을 하여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야 한다.
말세에는 성령을 남종과 여종에게 육체에 부어주시다 하였다. 그리하여 자녀는 자라는 것으로 하나님 계심을 증거하고, 남녀 종들은 충성으로 하는것이다. 주의 종들이 주를 위하는 생활을 하여 결코 헛되지 않은 수고와 투자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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