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중에서 복음운동에 관한 내용이다. 이 운동이 잘되어져야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사람에게 구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생명이고 구원이 되는 것이다.
믿는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말을 잘쓴다. 기쁜일이나 행복한일이나 성공적인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 말을 잘쓴다. 그러나 인간이 해야할일을 하나님 핑계대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학교에 합격을 못하고도, 교통사고를 당하여도 하나님의 뜻인데 별수 있나요 한다. 그러다 보면 거의 숙명론이나 운명론은 아무 의식없이 자연에 맡기고 될대로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정은 주관자의 목적이 있어 필연적으로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운명론은 신앙적인 의의를 찾지못하고 예정은 하나님의 뜻에따라 신앙으로 순종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할일이니 이뜻을 잘알고 기도할 것이다.
우리의 취할 태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기도속에는 피를 흘리는 아픔이 있어야하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할 수 없기에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요5:30 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하였다. 나는 나의 원대로 하지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한다 하였다. 요18:11에서 내 아버지께서 주신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1) 자기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일을 하여야 한다.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시오' 하고 계속 구하는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한다. 찬송가의 내용에 나의 품은 뜻 주의 뜻같이 되게 하여 줍소서 하는 내용이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모친과 동생을 보며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동생이요 모친이라 하셨는데, 이는 불효가 아니라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더 치중하라는 말씀이다. 사실 육신의 부모는 부모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소원이 어찌 없겠느냐.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거시라 하면 자기의 소유나 행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같이 산 사람들이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이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 등 모두 자기의 길을 버리고 고생과 수고속에서 하나님께 한걸음이라도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평안할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더라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길은 하나님의 길이라 하여 따르고 어려운길은 핑계대고 회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캘빈은 하나님의 뜻이라 할때에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일을 하였다. 후대에 그의 사상이 전해져서 제네바에서 건전한 사상을 가지고 그의 후예들이 살고있다. 캘빈 당시에 천주교 세력이 개신교를 핍박하였으나 캘빈은 거기에 상관치말고 하나님 영광만을 위하여 생활할 것을 가르쳤고 다음에는 직업에 대해 철저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라 하였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였다. 이 가르침은 지금은 제네바를 있게 하였다. 450년동안 한번도 외침이 없었으며 철저한 생활태도로 살고있다. 자기의 모든뜻을 떠나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일이 있어야한다.
2) 형식을떠나 실제에 살아야한다.
마7:21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신다. 주여 주여 하는 형식으로는 안된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어려움이 있어도 형식을 떠나 진실을 가지고 따라야한다. 종교생활은 외식을 가지고 하면 안된다. 책임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사람을 상대하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상대하는 생활을 하는것이다. 그럴때에 내 힘이나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힘과 뜻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이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 된다. 렘29:11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것이라' 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살고 간 자취는 진실이 내포되어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들의 자취만 보아도 형식을 떠난것을 보여야한다.
'주여 주여' 하는 형식만 가지고는 안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형식적인 제물만을 가지고는 어찌 하나님을 섬긴다 할 수 있으랴 하고 지적하고 이것이 하나님께 짐이된다 하였다. 하나님은 실제로 공의를 행하고 믿어야지 가식적인 것은 안된다 하셨고 가난한 자들의 신 한 켤레를 빼앗으면서 사랑을 말해서 되는것이냐고 아모스 선지자는 지적하였다.(아모스 4:1-5) 아모스 5:15에서는 '공의를 이행하라' 하였다.
3) 사람이 행해야 하는것을 십자가를 지고 행해야 한다.
십자가 없이 되는것은 없다. 기본구원도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설정된 성화구원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데서 행해야한다. 찬송가의 '내 주여 뜻대로 하소서' 를 지은 벤자민 슈몰렉은 헝가리 사람이다. 그는 구교도 속에서 유일한 개신교 사람으로 거주의 제한을 받았고 90가지 합병증이 있어 매우 어려울때에 위의 찬송을 기도로 한 것이다. 괴로워도 사람이 할일은 행해야 한다. 힘들다고 이를 벗어 버릴수는 없다.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는일은 감당할때에 된다. 힘들다고 버리고 간다면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하나님의 뜻은 이같이 행해야한다. 오히려 기쁨으로 지고가면 주님께 맡기고가는 짐이되기에 가볍게된다. 그러므로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이 십자가를 멀리하게 해달라하면 바른자세가 아니다. 기쁨으로 달게지고가는 십자가가 되게해달라 할때에 천사가 수종들었던 예수님과 같이되어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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