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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법규.
[신명기 17:14-20]
네가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소유하여 그 안에 거할 때에 이르기를, 나도 내 주변의 모든 민족들같이 나를 다스릴 왕을 세우리라, 하거든
반드시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자를 너를 다스릴 왕으로 세울지니 곧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너를 다스릴 왕으로 세울 것이요,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지니라.
그러나 그는 자기를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며 말을 많이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지 말지니라.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후로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하셨느니라.
또 그는 자기를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 자기 마음이 돌아서지 않게 하며 자기를 위해 은금을 많이 쌓지 말지니라.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그는 자기를 위해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그 안의 것을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자기 형제들 위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가 이 명령에서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이스라엘 한가운데서 그와 그의 자손들이 자기 왕국에서 자기 날들을 길게 하리라.
오늘은 왕에 대한 법규에 대하여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은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롭게 다스려야 합니다. 통치자의 힘은 정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말씀에 보면 다윗 왕도 왕에 대한 자격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의로워야 된다고 지혜의 말을 남긴 것입니다.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부패 저지르고 비리와 범죄와 교활한 사기로 가득한 자가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성도들도 잘 알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것부터 얘기하자면 민생대란과 풍기문란 그리고 잔인한 폭정과 탄압 등등으로 선진국가로의 도약을 가로막고 좀먹는 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성경말씀 설교로 본론 들어가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왕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계명들에 순종하여야 합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의 기초는 십계명, 신명기 5:6-21) 그래야만이 질서있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을 세울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이스라엘인 형제를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법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통치력과 정의의 근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다윗왕 역시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리는 왕입니다. 타국인은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에 임의대로 자기눈에 보기좋은 대로 다스리기 때문에 결코 정의롭게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질서의 혼란과 국가 붕괴가 부정부패와 탐욕스런 불의함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그래서 정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이집트(애굽)와 바빌론 국가 등의 이교도 우상숭배 풍습을 막기 위함입니다. 이는 모세의 십계명과 율법에 기록된 말씀에 창조주 하나님의 성령으로 순종하는 이스라엘인 형제를 왕으로 세우라는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특히, 사울왕의 불순종과 다윗의 순종은 영적 교훈을 배우게 되는데, 계명을 두려워하여 고난받는 성도를 구원의 왕관으로 높이시고, 말씀을 멸시하고 임의대로 방탕한 죄를 지은 죄인들을 스스로 멸망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13:13 말씀에, 누구든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망하려니와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상을 받으리라. 라고 한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 잠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가르치는 교훈의 큰 흐름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순종하여 생명의 왕관을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힘으로 능히 주의 계명들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불순종하여 패망하였고, 다윗은 순종하여 고난에서 구출받고 왕으로 세워져 큰 영광을 얻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하여 세우시고자 계획하셨던 왕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이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속적 요구에 허용된 임시왕이 사울이었죠. 불순종으로 강퍅하게 되어 멸망한 왕이 사울입니다.) 즉, 다윗처럼 신실한 왕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의 조건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들을 두려워함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성도입니다. 시편 5:2 말씀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리이다. 라고 한 다윗의 고백처럼 다윗왕도 하나님께 왕이시라 찬양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의 찬양을 힘있게 높이셨고 영광의 왕관을 씌워주셨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겸손의 모범과 본이 되는 성도가 왕으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성도입니다. 잠언 15:33 말씀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훈계이니 명예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땅의 왕들은 전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력들이고, 이들은 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기 때문에,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왕들의 통치자 이시기 때문에(계1:5), 왕이라고 하여 교만하게 권위 행사한다든가 오만방자하게 군림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잔인한 형벌을 집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성이라고 하여 왕의 권위를 시기 질투하거나 미워하여도 안됩니다. 왜냐면, 왕에게 권위와 능력과 힘을 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왕을 세우시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의 시대가 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교회)이 다 왕이고 다 제사장입니다. 또한 이들 이스라엘 144,000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땅을 통치함으로서 왕의 권위와 제사장의 권위로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가 더 높네 낮네로 다툴 필요가 없는것입니다. 왜냐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한 성도일수록 더 높이시고, 어린아이같은 크리스챤일수록 더 많은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시편 8:2 말씀에, 주께서 주의 원수들로 인하여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힘이 나오게 정하셨나니 이것은 주께서 원수들과 복수하는 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원수들은 수치와 저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고로, 지혜로운 왕의 자격과 기본 덕목은 겸손입니다. 잠언 22:4 말씀에, 겸손함과 주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를 두려워하여 계명들에 순종하는 지혜가 겸손이고 정의입니다. 겸손을 쉽게 얘기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공손히 순종하여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본 성도들은 무엇무엇이 범죄인지 다 알것이므로,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힘으로 계명들에 순종하면서 정욕과 싸우고 억제하면 모두 왕가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신명기 17장 말씀이 증언하는 왕의 자격은 백성 위에 오만방자하게 군림하지말고 선한 행실로 모범과 본이 되어야 하는데, 왕의 자격이 민주주의적인 인자한 대통령과 모습이 닮아있습니다. 다만, 민주주의와 신주주의 차이점이 있다면 신앙심이 있느냐의 차이이고, 진실한 정의로움으로 지혜롭게 선한 통치를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민주주의가 정의는 아닙니다. 근원적인 정의는 창조주께서 통치하시는 왕국입니다.) 그러나, 타국인이 왕이 된다면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자가 우상숭배자이므로 왕의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고 혼란만 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므로 타국인이 왕이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로 다스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택함받은 이스라엘인 형제가 왕으로서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극도로 타락한 때에 바빌론의 독재자 느부갓네살 왕이 이스라엘 포로들을 다스렸습니다. 모든 왕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때문에, 어떤 성품의 통치자가 세워졌느냐에 따라 현 시국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백성들의 도덕적 성품이 얼마나 건전한지 아니면 타락하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것입니다. 정의보다 경제에 관심을 두면 탐욕스런 독재자가 일어나 국민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것은 교훈으로 잘 알것이며, 성경진리를 배우기 싫어하고 먹고사는데만 관심가져도 역시 폭정을 휘두르는 독재자가 일어나 백성들을 탄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왕의 권위는 신앙심으로 말미암은 정의와 공의로 굳게 세워집니다. 사무엘하 23:3 말씀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의로워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다스릴지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믿어야 왕으로서의 자격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이 다스려야 온 땅이 기쁨과 화평을 누리며 질서가 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에 기록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지혜이고 영생이고 힘이며 구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를 왕으로 세우시면 그 국가는 크게 성공하게 되는데, 왜냐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이 세워지면 그 왕이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셔서 땅의 소출이 복을 받고, 드나드는 모든 행실에 복을 받아 풍요로운 결실을 취득하기 때문입니다. 부패하지 않은 왕이 권좌에 앉게 되면 정치적 성공과 출세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반면, 부정부패와 거짓말을 일삼는 왕의 권좌의 앉게 되면 정치적으로도 여론적 비난과 허영 사치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큰 저주와 민생대란을 겪으며 질서도 엉망이 되가며 국가적으로 혼란이 일고,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위엄도 제대로 서지 못합니다. 종말의 때에 일어나는 짐승독재자는 일시적인 형통뒤 멸망으로 형벌을 받습니다. 과거에 선진국이었던 미국은 기독교 국가였는데, 최근들어 더욱 이교도화 즉 가톨릭화 되자 점차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미국보다 더 종교적으로 부패한 국가가 우리나라입니다. 특히 교주들이 뱀같이 사기치고 속여서 헌금빼앗고 돈과 여자와 권력을 탐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교주들을 꾸짖지도 않고 교주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며 뿐만 아니라, 교주들이 입맛대로 이단교리를 합리화 시켜도 대충 타협하는 등.. 어리석은 교인들의 넋나간 행동으로 우리나라 개신교는 집단 사이비종교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부패한 정치지도자들도 어리석은 국민들때문에 더욱 국민들을 괴롭히며 경제적 수탈과 고혈착취를 일삼으며 권력유지와 부의 축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주나 탐관오리들이나 권력유지전략이 똑같은데 '거짓말' 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이 무기입니다. 마귀가 가진것도 거짓말입니다. 마귀는 진리가 없으므로 거짓말을 할수밖에 없는것입니다. 왕은 언제나 진리를 선포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선한 것이고, 악을 미워함으로서 정의가 굳게 세워지고 큰 영예가 되며 왕좌도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론은 이쯤 하고 왕이 조심하고 경계하여야 될 3대 탐욕 즉, 권력욕,색욕,재물욕에 대한 경계에 대하여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왕은 군사력(권력욕)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왕은 말을 많이 늘리지 말라는 계명인데, 말(馬)의 힘은 군사력을 상징합니다. 애굽(이집트)에서 출애굽한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의 부귀영화가 그리워서 애굽으로 돌아갈 마음을 품을 수도 있는데, 애굽은 세상의 힘을 상징하며 세속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적 비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강력한 이교도들이 상징하는 영적 국가가 애굽(이집트)입니다. 그리고 특히 왕정시대에 바빌론의 포로 생활의 예언되었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빌론 느부갓네살 권위에 순종하려 하지않고 이집트의 힘에 의지한 것만 보면(그당시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왕의 권위에 순종하면 구출받는 계명이었음), 이교도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인간의 잔머리의 추측과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왜냐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권능이 강하신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이고 힘이고 지혜이고 영생이고 방패임을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순종하는 성도들은 많지않아 고난을 겪는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군사력의 규모나 세(勢)의 크기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신앙심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대표적인 교훈이 바로 사사기 말씀에 등장하는 기드온의 300용사 이야기 그리고 사무엘상 말씀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등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고(계1:5),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에(계1:18), 왕이 주 두려워하는 지혜가 있으면 구원을 받고 방패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성경읽기를 기뻐함으로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이기는 힘은 군사력에 있지 아니하고 주께 속하였습니다. 군사력을 의지하지 않아야 창조주 하나님께 더욱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왕에게 더욱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군사력이 약할수록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빛나십니다. 왜냐면 전적인 권능을 행사하셔서 강하신 하나님을 온 땅에 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대 독재자들을 보면 특히 북한이나 러시어나 고대 로마 독재자들 시대에 최고의 권위는, 군사력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공산주의 국가는 군사력이 최고 권위입니다. 이들(북한,러시아 등..)이 군사비용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매우 큰 규모의 비용을 투자합니다. 이들의 권력은 진정한 정치권력이 아닌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뿌리는 군사력이 아니라, 우리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옵니다. 앞서 말한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왕들의 통치자(계1:5)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의지할 힘은 군사력이 되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왕이 두려워할 이 역시 사람이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시편 147:10-11 말씀에, 그분은 말의 힘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주께서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자신의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라고 한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이 왕의 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의 인구조사만 보더라도 다윗이 군사력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 선동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윗이 사욕을 품을 것에 분노하셔서 다윗을 미혹하기 위하여 노리는 사탄의 선동을 허용하셔서 다윗이 인구조사의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내용의 기록이 사무엘하 말씀과 역대기 말씀에 나옵니다. 왕은 권력을 잡으면 많은 군사력을 힘으로 삼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힘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13 말씀에,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하였고, 잠언 21:30-31 말씀에, 주를 대적할 수 있는 지혜나 명철이나 계략은 없느니라. 싸울 날에 대비하여 말을 예비해도 안전은 주로부터 오느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쟁과 환난으로부터의 구출과 구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은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지거나, 바빌론의 포로가 되거나, 스스로 패망하거나, 권좌에서 쫓겨나는 수치를 당한 원인은 강력한 이교도들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죄' 때문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계명)에 귀를 기울여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진리의 말씀의 성경기록이 좋은 훈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데서 나오므로, 힘의 근원이신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권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힘은 정의가 힘입니다. 이는 근원적인 힘이자 겸손하고 진실한 힘을 의미합니다.
둘째, 왕은 여색(색욕,정욕,향락)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왕은 자기를 위하여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계명인데, 이는 왕이 일부다처제를 거절하고 한 아내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꾸리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 말입니다. 창세기 2:24 말씀에,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내를 많이 두다가 부하의 아내 밧세바까지 탐욕을 부려 빼앗고 부하를 맹렬한 전쟁터에 몰아 간접살인하여 권력을 남용하였고, 솔로몬도 권력을 남용하여 1,000명의 아내를 두다가 이교도 아내들이 유혹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의 주요 교훈은, 왕은 일부일처제로 가정의 순결을 지켜 사탄이 정욕으로 훼방하는 일이 없도록 아담세대의 가정적인 결혼질서인 하나님의 창조에 합당한 기본질서를 지켜 성경말씀 읽기와 백성들을 위한 정치 이 2가지에 주력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솔로몬이 권력을 남용하여 아내를 많이 두다가 1,000명이 아내를 두었고 특히 이교도 아내들의 우상숭배 미혹에 넘어가 수치당하고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왕국이 분열된 것도 교훈이 됩니다. 그리고, 다윗이 아내를 많이 두다가 여자의 아름다움에 속하 부하의 아내를 탐한것도 교훈이 됩니다. 특히 다윗왕도 솔로몬왕도 둘다 신명기 17장 말씀에 기록된 아내를 많이 두지말라는 왕의 법규에는 불순종한 것입니다. 다만, 주께서 역사적으로 이렇게 몇몇 왕들에게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신 이유는 성경 기록으로 장차 세워질 왕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왕은 일부일처제로 가정의 순결을 지키고 겸손과 청렴으로 본과 모범을 보여 백성들을 다스리라는 교훈 말입니다. 그런데 왕이 아내를 많이 두는것이 인간적인 관념과 세속적인 관점에선 좋게 보이고 부귀영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썩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이 아내를 많이 두면 아내들을 더 사랑할 우려도 있으며 아내들이 권력다툼이나 의견차이로 시기 분쟁 등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왕이 여자의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방탕한 쾌락에 빠져, 주께로부터 믿음이 돌아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경건한 신앙심을 갖춘 왕이라면, 왕의 결혼제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일부일처제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특히 왕의 일부일처제는 왕이 백성위에 군림하지 않는 청렴함과 겸손함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엘가나처럼 두 아내를 두거나 더 많은 아내를 두면, 아내들끼리 많이 다투고 시기 분쟁이 오고갑니다. 사래와 하갈, 레아와 라헬, 한나와 브닌나 이 3가지 경우가 기록된 창세기 말씀과 사무엘상 말씀을 읽어보십시요. 아내를 많이 두는것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들입니다. 특히 기드온은 아내를 많이 둔 것이 화근이 된 것도 역시 일부다처제가 좋지만은 않다는 교훈을 줍니다. 전도서 4:6 말씀에, 한 손에 가득하고 평온한 것이 두 손에 가득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라고 한 것처럼 왕은 정욕의 만족을 추구하기보다는, 영혼의 기쁨을 소망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르무엘 왕의 어머니께서도 아들에게 훈계하시기를, 잠언 31:3 말씀에, 네 기력을 여자들에게 주지 말며 네 길들을 왕들을 멸망시키는 것에 주지 말라. 하였는데, 이 말씀은 왕이 여자들에게 마음을 쓰지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그리고 정의로운 통치 백성들의 위한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지, 그러지않고 여자들에게 마음을 기울인다면 성경을 읽고 정치를 하는데 소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일부다처제의 시초는 가인의 후손 라멕입니다. 아담의 첫아들인 죄의 사람 가인의 계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셋-에노스 등등으로 노아까지 이어지는 계보에는 성경에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일부일처제였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아담이 일부일처제였으며,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도 분명하게 일부일처제 였죠. 그래서 노아와 세 아들과 각각의 아내들 이렇게 8명이 방주에 들어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몰몬교 라는 이단종교가 일부다처제인데, 이 일부다처제의 주목적이 육신의 향락(육체의 쾌락)에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간음하지말라는 게명을 멸시하는 몰몬교신도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아내를 많이 두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왕이나 바빌론왕 등등 이교도왕이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은, 이스라엘의 순결과 경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교도 국가의 풍습입니다. 바알신을 상징하는 예배가 음란한 성행위입니다. 왕은 창세기 말씀에 등장하는 이삭과 요셉의 일부일처제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데도 음란의 유혹을 이기고 정의를 위하여 죄를 피하기 위하여 고난을 택한것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왕이 세속 향락을 거절한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크게 사랑한다는 증표이자, 굳건한 신앙심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한 일부일처제의 영적의미는 간교함이 없는 건전한 지혜와 순수함으로서 불순함(잡된것)이 섞이지 않는 순결을 의미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의로운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이 왜 일부일처제냐면, 요한계시록 19장 말씀에 어린양의 혼인잔치 기록에도 어린양의 아내 라고 하였지 아내들이라는 비유를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요한계시록 21장 말씀에 어린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 성(교회)에 대한 기록에도 '아내' 라 하지, 아내들이라 하지 않습니다.(계21:9) 즉, 요한계시록 예언의 말씀의 영적결혼 비유에도 하나님의 기본 창조질서인 일부일처제를 채택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전한 결혼질서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3:4 말씀에,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혼전순결과 건전한 가정을 지키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음란한 정욕을 가라앉히는 보조 수단은 보디빌딩, 런닝머신, 자전거, 등산 등등 '운동'입니다. 디모데전서 4:8 말씀에, 육체의 훈련은 유익이 적으나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의 생명과 다가올 생명의 약속을 지니고 있느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씀과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으며, 운동도 정욕억제에 약간의 도움이 됩니다. 특히, 지혜가 자라면 하나님의 지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혼을 사모하게 됩니다. 잠2:10-12 말씀에,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혼에게 즐거움이 될 때에는 분별이 너를 보존하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비뚤어진 것들을 말하는 자에게서 너를 건져 내리라. 라고 하였고, 시편 16:11 말씀에,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토록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즉, 왕은 여자의 육체적 매력에 속지말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시편 27:4 말씀에, 내가 주께 바라던 한 가지 일 바로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평생토록 주의 집에 거하여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이라. 라고 한 것과, 잠언 7:4-5 지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누이라, 하고 명철을 가리켜 네 친족 여인이라 하라. 그리하면 그것들이 너를 지켜 낯선 여자에게서 곧 말들로 아첨하는 낯선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리라. 라고 한 것처럼 지혜의 아름다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진리를 사모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복음을 기쁨으로 삼는 것이 더 좋은 축복과 영혼구원으로 보상받는 것입니다. 잠언 13:13 말씀에, 누구든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망하려니와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상을 받으리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는 영혼에 기쁨을 주므로 세상 소유를 사랑하지 않게 되고, 세속 향락을 거절하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랑으로 영혼의 갈증을 풀고 영생복음으로 기쁨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7 말씀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왕은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속지말고 육체의 쾌락을 사랑하지 말며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잠31:30 말씀에, 호의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주를 두려워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으리라. 라고 한 것처럼 여자의 아름다움도 헛된 것이므로, 왕의 참 소망은 향락에 있지 아니하고 주께 있는것입니다. 시편 39:7 말씀에,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왕이 가장 사랑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왕은 재력(재물,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왕은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말라는 계명인데, 왕이 사모할 것은 돈이나 재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게 섬길 수 없습니다. 그 둘중에 하나는 업신여길 것이나, 왕은 오직 하나님을 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2:1 많은 재물보다 오히려 좋은 이름을 택할 것이요, 은과 금보다 사랑 많은 은총을 택할 것이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재물보다 더 뛰어난 기쁨이 주 하나님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은 성경말씀에 기록된 법규를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을 기쁨과 흡족한 만족으로 삼아야 합니다. 시119: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의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땅에 것에 세상에 소망두지 말고 하늘에 것에 천국에 소망을 두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2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났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의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라. 라고 한 말씀처럼 말입니다. 세속적인 부유함은 다 썩고 낡고 부패되고 소비되는 헛된 것입니다. 잠언 23:5 말씀에, 네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네 눈을 두려 하느냐? 재물은 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내어 독수리같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느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에 돈이나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건담 프라모델 수집도 그만두었고, 스마트폰도 기존 3g구형폰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들도 물질에 탐욕부리지 않도록 합시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고장나지 않으면 그냥 쓰십시요. 그리고 물질적인 사치와 럭셔리상품등 관련된 구매로 돈을 쓰지말아야 합니다. 물품등의 소유는 기존에 가진 것들로 만족하시고 더이상 물질에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것입니다. 물질에 탐욕을 부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물질로 에봇을 만들어 음란한 우상숭배의 올무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물질을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교훈삼아 자기를 위한 소욕으로 물질에 탐욕을 부리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0 말씀에,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라고 한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서 돈과 재물을 사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왕은 권력과 정력(여색)과 재력을 신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힘과 기쁨과 보상으로 여기며 더욱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왕은 성경책을 읽는것이 일상이 되어 주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계명들에 순종하여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직과 청렴과 겸손에 본이 되어야 하고 건전한 행실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경건한 신앙심으로 왕의 왕좌가 굳게 세워지고 위엄있게 통치할 수 있는것입니다. 또한 왕이 하나님의 지혜의 법규를 배워 순종하기에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게명들에 순종하기 때문에 영생을 얻게 됩니다. 기독교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에 소망을 두는 구원의 신앙이지 타락한 거짓교회들 마냥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물질쾌락출세주의 종교는 아닌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권력,정력,재력에 있어 청렴과 절제를 실천하여 왕의 마음이 자기 형제들 위로 올라가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서 지혜를 받아 현명하고 의롭게 통치하는 권능 즉, 생명의 왕관을 얻는 것입니다. 잠언 14:18 말씀에, 단순한 자는 어리석음을 상속하거니와 분별 있는 자는 지식으로 관을 쓰느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왕의 물질적 재물 가운데 으뜸은 성경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왕이 국정운영을 할 때에 주력할 일이 성경을 읽고 듣고 지켜 순종하는 일과 선한 행실로 본이되어 모범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에 따라 적합한 치리자를 세우시며 때에 따라 합당한 통치자를 세우십니다. 경건한 백성에겐 경건한 왕을, 방탕한 민족에겐 폭정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말씀(복음)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여 순종하는 일입니다. 잠언 1:33 말씀에, 그러나 누구든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안전히 거하며 재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하리로다.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왕과 백성 모두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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