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기초/모세오경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아끼지않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

그리스도의 이스라엘(Christal Israel) 2022. 8. 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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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아끼지않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

[창세기 22:1-19]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청년들 가운데 두 명과 자기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 헌물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해 주신 곳으로 갔더라.
그때에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서 바라보니라.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무르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는 아브라함이 번제 헌물에 쓸 나무를 취하여 자기 아들 이삭에게 지게 하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르니라. 아브라함이 거기에 제단을 쌓고 가지런히 나무를 놓고는 자기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나무 위에 놓고
자기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더니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므로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이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 하느니라.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였노라. 곧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즉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오늘 말씀에 이삭이 번제헌물로 예비된 것은, 이삭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계시임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이라 한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아들로 여기심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 말씀에,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생자라는 것도 요3:16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하나님의 시험은 선한 시험으로서, 더 많은 복을 주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12-15절 말씀에, 시험을 견디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단련을 받은 뒤에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관(冠)을 받으리라.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에 시험을 받나니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이 시험을 견디지 못한 것이고,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견디고 단련을 받고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능히 견디고 인내하여 복을 받았는데, 이는 주를 두려워하는 지혜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것입니다. 아담은 피조물들에게 이름까지 지어줄 정도로 탁월한 지혜가 있었으나, 계명을 지키려 하지 않으므로 시험에 넘겨진 것입니다. 결국, 지혜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주 두려워하기를 배워 계명들을 행하는 근원적인 지혜)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창시자이십니다.(히12: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이삭을 아끼지않고 주의 명령대로 행함으로 주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 및 인정을 하시고 아브라함은 언약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순종이 희생헌물보다 낫다고 하였고(삼상15:22), 번제헌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고 하였으며(호6:6),수많은 희생물보다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요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미6:6-8) 결국 헌물보다 순종을 바라시고, 주께서 헌금 잘내는것보다는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으로 행함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헌금은 종교지도자들이 배터지게 돈잔치하고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게 흥청망청 낭비하는데에 쓰여질 것이 아니라,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쓰여져야 합니다.) 잠언 13장 13절 말씀에, 누구든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망하려니와 명령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상을 받으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원론적인 흐름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신 주께서는 이삭 대신에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마리를 예비하셔서 번제헌물로 바치도록 인도하십니다. 양(羊)은 교회를 상징하기도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양도 그러하고 이삭도 그러하고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어진 것입니다. 욥기 41장에 보면, 리워야단 이라 하는 그 구부러진 뱀(사27:1) 사탄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피조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양 역시 피조물인데, 이것 역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하는 계시가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비유할땐, 교회를 위하여 피조물의 위치까지 낮추신 창조주의 모습으로 희생과 고난으로 헌신하신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피조물의 죄들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대속물과 희생헌물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에,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린양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이삭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나, 아브라함의 믿음 역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아끼지 아니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과 헌신을 하신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힘센용사 삼손 여호수아 입다 기드온 사울 다윗 등등이 전쟁할 때에도 자기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맹렬한 전쟁터에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이런 모든 희생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도 마귀와 전쟁하여 마귀의 사망권세를 무너뜨리기위한 희생이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전쟁할때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에게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과 헌신'입니다. 의롭고 선한 행실을 행하는 희생헌물이 가장 값진 희생물인 것입니다.
의로운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요, 죄짓는 자녀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에게 임하는 것입니다.(골3:6)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드을 다 미워하시므로(시5:5) 성도들은 주의하여 죄를 짓지 맙시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 자마다 죄를 짓지 않고 믿음의 순결을 지키는 처녀교회로서 자기를 지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 말씀에,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아노니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매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이 기본 교리를 가지고 소망을 가지십시요. 아브라함도 외아들 이삭을 바침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굳건한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말씀에도 그 풀이와 주석이 있는데, 히브리서 11장 17-19절 말씀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바쳤으니 곧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기의 독생자를 바쳤느니라. 이 아들에 관하여는 그분께서 전에 이르시되,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능히 그를 일으키실 줄로 생각하였으므로 또한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모형으로 받았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 전능자 하나님(계1:8)의 주권을 믿은 것입니다. 어찌되었든지 순종하면 복을 받음을 믿고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언약하신대로 그 축복들을 다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수단과 방편'으로 믿으려 하지않고 '그분의 목적과 계획'을 기다리며 열심을 내어 신실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간교함 교활함 약삭빠름 등의 꾀가 배제되고 오직 순수함 순결함으로 신뢰하여 믿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믿음을 출세를 위한 수단이라든지 이득을 위한 방편으로 삼아 거짓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그러한데, 그들 위에 우뚝서서 군림하여 카리스마(통솔력)있는 설교로 유혹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아브라함처럼 행하는 믿음이야말로 살아있는 믿음이라고 야고보서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20-24]
그러나, 오 허무한 사람아,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드릴 때에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하시는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보거니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단지 믿음만으로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가짜목사 왈, '죄를 용서받았으니 행위와 상관없이 믿기만 하라'는 왜곡된 설교를 하는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선한 행실이 뒤따르는데, 입으로만 믿으라니 가짜목사들이 그럴듯한 달콤한 속임수로 사기친 것이죠. 이러한 가짜목사들의 행태에 대하여 유다서 말씀에 기록되기를, 유다서 1장 4절 말씀에,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이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도록 꾀어 속이는 거짓대언자들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이란, 행실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돈과 재물과 색욕과 권력에 탐욕을 부리는 자들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와 권력 등의 소망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으므로 그분을 믿었고 이삭을 번제헌물로 바치라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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